2023년 3월 17일부터 4월 15일까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아뜰리에 아키’에서는 호주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네이슨 패디슨(Nathan Paddison)의 국내 첫 개인전 <X Paddison>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는 한국 관람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패디슨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소개하며, 현대 회화의 생명력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관람은 무료였고, 전시장 내부는 비교적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평일과 주말 모두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운영되어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네이슨 패디슨, 거리에서 캔버스로 옮겨온 날 것의 감성
네이슨 패디슨은 호주 빅토리아주 출신으로, 미술 학교나 전통적인 예술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리의 낙서, 공공 벽화, 낡은 포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 속 강렬하고 거친 에너지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의 작업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언어, 때로는 동물이나 인물의 상징적 형태를 통해 관객과 정서적으로 소통합니다. 패디슨은 표현 그 자체가 목적이며, 작업 과정을 통해 정체성과 상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감상보다 경험에 가깝습니다. 표면 위에 얹힌 선과 색의 폭발은 오히려 캔버스를 살아있는 장소처럼 만들며, 현대인의 내면을 직설적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전시 공간과 구성: 소리 없는 파동처럼 다가오는 회화
<X Paddison> 전시는 총 20여 점의 회화 작품과 몇 점의 드로잉으로 구성됐습니다. 모든 작품은 패디슨 특유의 두꺼운 붓터치와 다양한 재료가 혼합된 텍스처가 인상적이었으며, 캔버스에 직접 그려진 단어나 문장은 무의식의 언어처럼 보였습니다. 작품 제목은 대부분 작가의 손글씨로 캔버스 내부나 여백에 적혀 있었고, 이는 감상의 방향을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상상력을 확장시켰습니다. 전시장 배치는 색상이나 주제별 구역 없이, 오히려 무작위로 걸린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이는 패디슨 작품의 본질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작품 간 거리는 넉넉하게 유지되어 시각적 몰입이 가능했습니다. 조명은 자연광과 혼합된 간접조명으로 작품의 질감과 색의 대비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 파편화된 감정의 조각들이 만든 통찰
패디슨의 회화는 전통적 주제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정서적 울림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정신적 방황, 사회적 소외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를 시작했으며, 이는 작품 속 언어적 파편과 이미지 속에 내포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Wounded Dog’ 시리즈는 상처 입은 동물 형상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며, 관객에게 연민과 불안을 동시에 전달했습니다. 또한 텍스트가 삽입된 일부 작품에서는 작가의 내면적 독백이 드러났으며, 이를 통해 관객은 작가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요소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고 사유를 유도합니다. 이처럼 패디슨의 회화는 회화 너머의 언어이며,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생생한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전시의 의미와 앞으로의 기대
<X Paddison>은 단순히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를 넘어, 국내 미술계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날 것의 회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는지를 실험한 장이었습니다. 아틀리에 아키는 매번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이번 전시 역시 그 정체성을 유지하며 관람객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습니다. 패디슨의 국내 첫 전시가 앞으로 아시아권에서의 전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며, 국내 컬렉터와 갤러리계에서 그를 주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 압도되는 경험을 했고, 특히 ‘Dog in the Mind’라는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패디슨의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체험 그 자체였습니다. 정리하자면, 네이슨 패디슨의 <X Paddison>은 회화가 말할 수 있는 언어의 경계를 넓히고, 예술이 전달할 수 있는 정서의 깊이를 새롭게 보여준 전시였습니다. 또한, 생경하지만 진실된 감정의 언어를 찾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