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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뮤지엄원(Museum1) <상실의 징후들> 관람기 (상실·감정·예술)

by 부룡 2025. 7. 5.

배준성 - 미술관 시리즈
배준성 - 미술관 시리즈

 

2023년 6월부터 2024년 8월까지 부산에 위치한 뮤지엄원(Museum1)에서는 메인전시 <상실의 징후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8,000원이었고, 15~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는 ‘상실’이라는 누구나 겪는 감정에 대해 다양한 시각예술과 설치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겪는 관계의 이별, 환경과 기억의 소멸 같은 주제를 다뤄 공감대를 형성했고, 단순한 감상이 아닌 ‘감정의 탐색’이라는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다양한 매체의 예술로 재해석한 ‘상실’의 개념

이번 전시는 회화, 설치, 영상, 사운드 아트 등 여러 장르의 매체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김연희 작가의 대형 회화 시리즈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붓질 하나하나에 눌린 감정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서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서는 백승현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반복되는 무음과 간헐적인 속삭임이 공간 전체에 퍼져 ‘사라짐’이라는 주제를 극대화했습니다. 관객들은 설치된 헤드셋을 착용한 채 소리의 공백을 감각으로 느끼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영상작업 중에는 한승아 감독의 단채널 비디오 아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폐허가 된 집을 천천히 비추는 카메라와 중첩된 내레이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실의 기억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감정과 공간을 연결하는 몰입형 구성

뮤지엄원은 공간 연출에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전체 전시 동선은 ‘시간의 흐름’을 모티브로 삼아, 입구에서 출구로 갈수록 감정의 층위가 점점 짙어지는 구성을 택했습니다. 관람자는 처음에는 다소 거리감 있는 시각적 요소들로 시작하지만, 전시가 진행될수록 점차 밀폐되고 어두워지는 공간으로 이끌리며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조도와 음향, 작품 배치의 리듬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어 전시 전반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느껴질 만큼 몰입감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마지막 공간인 ‘흔적의 방’은 실내 온도까지 낮추어 체감적인 상실을 경험하게 했으며, 바닥에 흩어진 폐사진과 비어 있는 액자들은 관객 각자에게 잊고 있던 감정의 조각을 끄집어내는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전체 공간을 감각적으로 설계해 관람자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경험자’가 되도록 유도한 것이 특징입니다.

전시가 던지는 메시지: 상실은 끝이 아니라 감정의 변곡점

<상실의 징후들>은 단지 슬픔을 묘사하는 전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각 작품은 상실이란 감정이 단절이 아닌 전환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수아 작가의 ‘식물의 언어’ 시리즈는 고사한 화분에서 다시 자라나는 새싹을 그려내며 ‘회복’의 가능성을 표현했고, 이는 관객에게 위로를 건네는 역할을 했습니다. 상실을 피하거나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써 다음 감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게 한 점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관객 중에는 감정적인 환기를 겪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묵묵히 자신의 속도를 따라 작품과 공간을 지나며 개인적인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은 높았으며, 주제 전달력과 감정의 리듬 조절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었습니다.

미술관에 던지는 질문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배준성 작가의 ‘미술관’ 시리즈는 서양 근대가 만든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과거 미술관은 계급적 위계질서를 반영하는 권위의 공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점차 대중의 일상과 맞닿은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배준성은 이 흐름 속에서 미술관이 지닌 제도적 권위를 해체하고, 스스로가 상상한 ‘이상적 미술관’을 회화로 구현합니다. 그는 유럽의 고전 미술관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그 중심에 자신만의 작품을 끼워 넣습니다. 이 행위는 전통적인 위계 구조를 교란하는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갖는 권위는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미술작품의 가치 역시 외부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와 작가의 주체적 인식 속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무리하며

<상실의 징후들>은 시각예술과 설치, 영상 매체를 통해 상실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탐구한 전시였습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 설계된 공간과 몰입형 구성은 성찰을 유도했고, 상실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제의 무거움과는 달리, 관람객들이 체화할 수 있도록 각 작품들이 주는 전달력이 좋으므로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