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평소 한국 근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번 전시는 꼭 보고 싶었는데, 기대 이상의 깊이와 감동이 있는 전시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시 관람 내용을 중심으로, 전시의 의미와 구성, 인상 깊었던 작품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건희컬렉션이란?
이건희컬렉션은 2020년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말합니다. 기증 규모는 약 2만 3천여 점으로, 한국 미술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이번 부산시립미술관 특별전은 그중에서도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 8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이고 있어,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단순히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수집'이라는 주제 아래 그 흐름과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전시 구성 소개
전시는 총 4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돼 있었습니다. 전시실 입구부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작품 감상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1. ‘수집의 시작’ – 최초의 시선들 - 이 섹션에서는 1930~50년대 한국 근대 미술의 태동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혜석, 김은호, 김환기 초기작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 시기의 한국 화단이 어떤 흐름을 겪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2. ‘한국화의 확장’ – 전통과 현대의 대화 - 이전 세대의 전통 화풍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등의 대표작들이 소개됐는데, 특히 박수근의 ‘나무와 여인’은 소박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3. ‘단색화와 실험’ – 1970년대의 도전 -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흐름인 단색화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코너였습니다. 윤형근, 김창열, 정창섭 등의 작품들이 소개됐고, 그들의 미학적 실험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는 텍스트와 도판도 함께 제공되어 이해를 도왔습니다 4. ‘국제화와 개성’ – 세계로 향하는 한국 미술 - 1980년대 이후,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가장 많은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고, 이우환의 작품은 ‘여백’의 미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
전시장에서 특히 오래 머물게 했던 작품들이 몇 점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환기의 점화(點畵) 시리즈입니다. 푸른 점들이 가득한 화면은 멀리서 보면 우주처럼 느껴졌고, 가까이 다가가면 작가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 압도적인 화면은 많은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박수근의 회화입니다. 굵고 거친 선, 단순한 구성이지만 삶의 무게와 정서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작은 것에서 큰 울림을 준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변관식의 「관폭」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 전통 산수화의 깊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폭포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월의 흐름을 응축한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먹의 농담과 여백의 조화는 깊은 산중의 고요함과 물소리의 생동감을 동시에 전달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묵상하게 만듭니다. 변관식 특유의 절제된 필치와 구성력은 동양화의 미학적 정수를 느끼게 해주며, 전통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고자 한 작가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시가 주는 의미
이번 특별전은 단지 유명 작품을 보는 전시가 아니었습니다. 수집의 의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시대정신과 작가들의 철학까지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건희컬렉션이 가지는 가치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한 개인의 수집이 어떻게 한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고,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한국 근현대 미술이 겪은 격동과 실험,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미술에 대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마무리하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수집: 위대한 여정》은 단순한 미술전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 미술 100년을 돌아보는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전시 구성도 체계적이었고, 각 작품 옆에 배치된 해설문과 오디오 가이드도 관람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분은 물론, 한국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건희 컬렉션이 다시 개최될 경우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