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는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의 회화 세계를 조명한 특별전입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개최되었으며, 장소는 대구미술관 1, 2 전시실입니다. 고전 미술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사진가’라는 시선으로 렘브란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렘브란트의 회화, 왜 ‘사진가’로 불릴까?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의 화가’로 불릴 만큼 명암대비를 극대화한 기법을 활용한 작가였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에서는 인물의 표정, 피부의 질감, 배경의 깊이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렘브란트가 사용한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은 어두운 배경 속에 밝은 얼굴을 띄우는 방식으로, 19세기 이후 흑백사진의 인물 조명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회화기법이 당시 렘브란트가 단순한 화가를 넘어서 시각예술의 ‘기록자’였음을 보여줍니다. 전시 기획자 측은 렘브란트를 ‘17세기의 시네마토그래퍼’라고 표현하며, 그의 작품을 통해 시간이 정지된 듯한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에 주목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과 자화상, 렘브란트의 시선이 머문 곳
렘브란트는 초기부터 일상 속 인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레이던 시절부터 거리의 행인, 거지, 악사 같은 인물들을 판화의 주제로 삼았고, 이는 그의 예술 세계에 중요한 방향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주제 선택은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판화가 자크 칼로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렘브란트는 인물을 이상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내려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특히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거울을 통해 관찰하며 수많은 자화상 판화를 남겼고, 이는 그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화상은 단순한 연습용 도구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명함처럼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렘브란트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모두 작품 속에 균형 있게 담아냈습니다.
회화 속 인간다움, 감정의 결을 그리다
렘브란트는 단순한 초상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인물의 내면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목욕하는 바테셰바>, <사울 앞의 다윗> 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의 죄책감, 고뇌, 연민 등 복잡한 감정들이 드러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렘브란트의 드로잉과 에칭도 함께 전시되어, 회화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인물의 순간적인 감정 변화까지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잉크로 빠르게 그려낸 한 여성의 초상화는 마치 연필 스케치처럼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우수와 감정은 매우 섬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렘브란트는 단순히 형상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감정의 기록자’로 평가받는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조명과 구도, 영상미의 원형
이번 전시는 단순히 렘브란트의 그림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시선과 연출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그의 회화를 디지털 영상으로 재구성한 멀티미디어 설치물이 배치되어, 렘브란트의 구도와 조명이 오늘날의 영상 미디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야경>에서의 조명 배치는 현대 영화 촬영에서 인물 중심의 라이트 구도와 매우 유사합니다. 전시 해설에서는 마틴 스콜세지, 히치콕 같은 감독들도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며 관람객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이런 시도는 렘브란트를 단순한 고전화가가 아닌 ‘현대적 미감의 창조자’로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렘브란트를 다시 본다는 것, 고전의 재발견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는 렘브란트라는 고전 화가를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서, 인간의 감정과 시간을 기록한 시각 매체의 원형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렘브란트의 예술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회화가 단지 ‘보는 것’을 넘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대구미술관의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는 회화의 거장 렘브란트를 ‘사진가’라는 시선으로 조명하며, 인물과 감정을 빛과 구도로 기록한 그의 세계를 통해, 고전 미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